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갈등은 역사적으로 신학적 논쟁을 넘어 정치적 권력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가톨릭교회가 과거에 개신교를 이단으로 규정했다가 현대에 들어 그 입장을 바꾼 것은 종교적 변화보다는 정치적 생존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현대에 들어서 발생한 변화는 종교의 권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목적에 기인한 것입니다. 이단 규정은 상당히 자의적인 개념으로 자리잡은 면이 있다. 태생적으로 배타주의적이며, 이에 대한 규정은 역사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단어가 아닌, 종교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네거티브한 언어가 수단이 된 형태이기 떄문이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은 처음부터 신학적 논쟁보다는 정치적 권력 싸움이었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교회는 종교적 권위를 통해 정치적 지배력을 행사하던 거대한 권력 기구였고, 개신교는 이를 깨부수기 위한 도구였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신학적 비판으로 포장됐지만, 결국 권력 재편을 요구하는 정치적 도전이었다. 개신교가 부상한 이유도 유럽 각국의 왕과 귀족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이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가 개신교를 이단으로 규정한 것도 신학적 차이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기득권을 방어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종교적 권위는 곧 정치적 영향력이었고, 이를 놓친다면 교회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이단이라는 꼬리표는 무용지물이 됐다.
세속화가 진행된 사회에서 종교 간의 싸움은 오히려 교회의 권위를 더 약화시킬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가톨릭교회는 개신교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행위를 멈췄다. 교리적 변화라기보다는, 정치적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현대 국가들이 종교의 정치적 영향력을 점차 줄여가고 있는 상황에서, 종교는 더 이상 과거처럼 국가 권력에 군림할 수 없다. 그러니 교회는 타협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개신교와의 갈등을 줄이고 협력을 도모함으로써, 제한된 정치적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계산이다.
결국, 가톨릭교회가 개신교를 더 이상 이단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은 종교적 관용의 증거라기보다는 정치적 현실에 순응한 결과다. 종교적 갈등이 사회적 불안정의 원인이 되는 세상에서, 교회는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갈등을 피하고 협력하는 방법을 택했다. 종교 간의 관계는 이제 신학적 진리보다는 정치적 실리에 따라 좌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