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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은 외면하고 경찰은 도왔다: 가톨릭 성범죄 조직적 은폐

reuby4 2025. 6. 5. 07:55
자료화면 출처: www.amp.dw.com

ㅣ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어진 비극

두 대륙을 넘나든 교회 성범죄의 충격적 실상
침묵 속에 감춰진 또 다른 비극
미국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 아동 성범죄 사건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는 교회가 조직적으로 은폐해온 더욱 충격적인 사건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안토니오 프로볼로 청각장애인 학교 사건은 특히 참혹하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아르헨티나까지 이어진 이 사건은, 수십 년간 가장 취약한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현실을 보여준다.

ㅣ이탈리아: 30년간 이어진 지옥
이야기는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의 프로볼로 농아학교에서 시작된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무려 30년간. 이 학교의 졸업생 67명이 한목소리로 증언했다. 사제들과 수도사들에게 반복적으로 성적 학대와 폭력을 당했다고.
청각장애라는 약점 때문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제대로 신고할 수도 없었던 아이들. 그들의 고통은 너무나 오랫동안 침묵 속에 묻혀 있었다.
피해자들은 처음엔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교회는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2009년, 그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집단 폭로에 나섰다.
그 중 14명은 자신들을 학대한 24명의 가해 성직자 명단까지 제출했다. 이 명단에는 한 명의 이름이 특히 주목을 받았다. 바로 니콜라 코라디 신부였다.
아르헨티나: 바다를 건넌 범죄
코라디 신부는 1970년대 이후 아르헨티나로 건너갔다. 그곳에는 이탈리아와 같은 이름의 자매 학교가 있었다. 프로볼로 청각장애인 학교.그는 아르헨티나에서도 같은 범죄를 반복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까지, 멘도사의 프로볼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코라디 신부와 아르헨티나인 호라시오 코르바초 신부는 또다시 어린이들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
다행히 2016년 말, 두 신부는 경찰에 체포되었다. 2019년 아르헨티나 법원은 명확한 판결을 내렸다.
• 코라디 신부: 징역 42년
• 코르바초 신부: 징역 45년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아이들이 고통받은 뒤였다.

ㅣ교회의 조직적 은폐와 미온적 대응
이 사건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교회 조직의 대응 방식이다.
뒤늦은 조사, 의도적 축소
이탈리아 피해자들이 주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구체적 증거를 제출하자, 그제서야 바티칸이 2010년에 조사를 지시했다.
조사관으로 임명된 마리오 산니테 법관은 수개월간 피해자들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스러운 일이 벌어진다.
산니테 조사관은 코라디 신부를 지목한 증언만은 의심스럽다며 보고했다. 그 피해자가 “너무 많은 가해자를 지목했다”는 이유로 신빙성을 깎아내린 것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피해자들이 지목한 24명의 가해자 중 단 5명만 교회 징계를 받았다. 코라디 신부는 그 5명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나머지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바티칸은 고령을 이유로 일부를 사실상 면죄해주거나, 아예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징계받은 이들도 “아이들과 떨어져 기도 속에 지내라”는 가벼운 처벌뿐이었다.

ㅣ경고를 무시한 바티칸
2014년 10월, 이탈리아 피해자들은 마지막 시도를 했다. 교황 프란치스코와 베로나 교구에 공동 서한을 발송한 것이다.
이 편지에는 여전히 살아 활동 중인 가해 성직자 14명의 명단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코라디 등이 아르헨티나에서 계속 사역 중이라는 긴급한 경고도 담겨 있었다.
바티칸의 반응은 어땠을까?
즉각적인 답변은 없었다. 2년이 지나서야 프란치스코 교황의 측근인 안젤로 베추 대주교가 회신을 보냈다. 내용은 “교황이 사안을 주목하고 있으며 아동 보호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뿐이었다.
정작 아르헨티나 현지에서는 어떤 경고도 전달되지 않았다. 멘도사 교구는 나중에 “코라디의 과거를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바티칸과 교구 사이에 위험 인물에 대한 정보 공유나 감시 체계가 전무했던 것이다.

“교회는 외면했고, 경찰이 대응했다”
결국 2016년 아르헨티나 경찰이 학교를 급습하여 가해자들을 체포한 이후에야 바티칸은 부랴부랴 조사단을 파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에도 공식적인 사과나 입장 표명을 거의 하지 않았다. 바티칸은 코라디 신부의 체포에 대해서도 “논평을 사양한다”며 침묵했다.
“교회는 그들을 비참하게 저버렸고, 교황은 외면했으며, 결국 경찰이 대응했다.”
이 말이 이 사건의 본질을 가장 잘 요약한다. 코라디 신부는 2009년부터 위험 인물로 알려졌지만, 교회의 방치로 거의 10년간 추가 범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결국 세속의 경찰과 법원이 나서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이 사건은 겉으로는 신뢰와 도덕을 내세우는 거대 조직이 내부적으로는 권위와 이미지 보호를 위해 얼마나 오랜 기간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다.
가장 약한 자들,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청각장애 아동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방치하고 은폐한 시스템의 문제점.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